5부, 마약 중독은 영성 치유가 효과적이며 빠른 치유가 가능하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명제-
본문
이명훈 교수
하나님과 본향의 환대, 이보다 우리를 세상의 얽매임에서 온전하게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성도가 죽음이 문턱에서 영원한 집, 본향의 환대 속에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주시는 풍성함을 경험하며 육신의 고통으로 부터도 해방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깊게 세상에 얽매인 채 노예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리적인 대상, 그것이 사람이든 물질이든, 그것들의 성과물에 의존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희비애락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살아간다. 그것이 중독의 원인이다. 중독으로부터 온전히 해방이란 죽음의 문턱을 넘어 본향의 환대 속에 오늘을 살아가는 삶에서 오는 선물이라 생각한다. 영생에서 세상을 소풍으로 볼 수 있다면 중독의 독성에 결코 감염되지 않을 것이다.
(중독과의 이별 노상헌저p.252-256)
나 하늘로 돌아가련다 / 새벽빛 와 닿으면 쓰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련다/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련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웟더라고 말하리라.(천상병 시인의 “귀천”)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인 “하이데거”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명제’라고 한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확실성에서 자신의 철학을 구축한다. 그리고 뜻밖에 죽음의 관점에서 보니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신비로움과 성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런 자세로 살아가는 것을 그는 “시적인 태도”라고 부른다. (우리는 빈 “관”을 준비하여 스스로 들어가서 누워서 죽음을 맞이 해보는 삶을 살아보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
하이데거는 실용주의적인 기술자와 경영인들을 양산하는 현대교육과 과학 기술 시대의 폐해를 보았다. 그는 현대과학의 근거에서 사물들을 지배하려는 의지가 작용하고 있고, 그런 관점에서 사물들을 고찰한다는 사실을 간파합니다. 이로인해 현대인들은 소외감과 고독감 그리고 허무감에 빠지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락과 향락에 탐닉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시적 태도를 가지고 지상에 거주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지상의 모든 인간과 사물의 성스런운 신비을 경험하며 산다는 것은 인간만의 소명이며, 이러한 소명에 따라 살 경우에만 인간의 삶에 참된 기쁨이 주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박찬국 서울대 교수의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하이데거 명강의에서”) 이런 시적 태도를 회복한다면, 모든 존재가 중독적 욕망과 탐욕의 대상에서 진정한 사람의 대상으로 전환될 것이다. 보다 아름다운 세상으로 충만해지고 기쁨의 음미와 감사의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중독으로부터의 진정한 회복이며 영적 회복이다.
포르노 중독자의 고백을 보면 제게는 눈에 들어오는 여성이 하나의 포르노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는 것을 오늘 처음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오직 나의 목적의식과 욕망의 대상으로만 본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오면서 참으로 놀랍게도 하늘이 보였다고 하면서 무척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푸른 하늘이엇고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시적 태도와 음미가 회복되면 소소한 일상과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깊이 맛보고 느낄수 있게 된다. 중독문제로 고생하던 선교사님은 선교지로 파송되여
그곳 사람들은 통나무로 지은 집과 텃밭이 딸린 농장에서 기거하며 농사를 짓고 선교 활동을 하면서 3년 경험이 “김혜련 저 “밥하는 시간”이 자신의 마음과 같았다고 한다.
어리석게도 나는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허공 위를 질주하다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삶의 허공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서 깨닫고 있는것이다. 내가 내팽겨 친 것이 삶을 받쳐 주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음을, 너무도 당연해서 물음 조차 던지지 않았던 근원의 영역, 그것은 집이며 밥이고 몸이고 땅이고 생명이다.(밥하는 시간 p.18)
C학생은 중학교 2학년때 중독에 빠져 무기력한 생활을 하다 환경을 바꾸기 위해 말레이시아 난민촌으로 두 달간 교육 봉사활동을 가서 그곳 아이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며 매우 따르니 한국의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취급을 당했는데 아이들의 눈 속에서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발견하고 그 이후에 큰 변화를 경험했다. 대학생이 된 지금은 코이카 대원으로 이디오피아 난민촌에 갔다고 한다. 도움을 주러 갔다가 도움을 주는 경우이다. 사랑하러 갔다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K 성도도 동일한 치유의 경험을 했다. 도박 중독으로 모든 것을 잃고 가족마져 포기할 무렵 중독치료차 의료선교단을 따라 아프리카의 가장 오지인 곳에, 도박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세 달을 선교하다가 큰 회심을 경험하고, 스스로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다가 그곳에서의 작은 손길에도 행복과 희망을 느끼는 선한 손길들을 바라보며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행복 감이었다고 한다. 그는 3개월로 시작하여 6개월이 5년이 되었고 당연히 중독으로부터 자유를 얻게되었다. 그곳에서의 자신이 새로운 가치와 의미에 눈을 뜨게 되고, 중독이 줄 수 없는 온전한 기쁨 삶에 어느 덧 중간 전두엽이 회복되어 진정으로 이웃과 자신을 사랑하는 영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중독자들이 회복과 치유로 중독 치유 상담사의 길에서 열심히 같은 처지의 고통 속에 방황하는 중독자를 돕고 함께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볼 때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희열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이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혁하여 선을 아루느니라(롬8;28)”
중독에서 고통받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쾌락과 호기심과 유혹으로 관심”을 가지려는 모든 “현재와 미래의 중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축복의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찬송과 영성치유 (음악치료와 영성치유)
;크리스찬 영성치유와 음악치료, 임종환저 참고)
찬송과 전인치유
a) 영적치유
(1) 정의
영적치유란 어떤 사람의 영적인 삶이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갱신, 나아가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영이 병드는 현상은 그 사람 자신 안에 있는 죄나 상처로 인하여 일어난다. 사람이 상처를 너무 받으면 영혼이 병든다. 병이라는 말은 기분 좋은 말이 아니므로 질환이라고 하면, 정서적인 질환이 깊어 가면 영도 병든다는 사실이다. 이때 그리스도의 피를 입으로 부르는 것은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이 있다.
가장 심오하고 우선적인 영의 치유는 인간이 진정으로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치유하여 주시는 은혜이다.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받아들일 때, 보혈의 피 공로를 의지할 때에 인간의 영은 치유를 받을 수 있으며 용서를 체험해 나갈 때에 영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영적치유는 심리치유와 육체치유를 통해 건강이 첨가될 때 온전한 건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네 가지 측면에서 건강하게 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서사전은 “치유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거나 건장을 회복시킨다는 의미” 로, 그 방법과 내용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사고로 인한 상처, 외과적 질병 등을 낫게 하거나 육체 또는 정신의 특정한 병적 상태를 효율적으로 치료하는 행위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건강은 개인과 사회의 안녕의 역동적 상태로서 육체적, 정신적, 영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안녕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서로서로 뿐 아니라 물적 환경과 하나님과 조화를 이룬다. 안녕이라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 역동적인 접촉에 있음을 지칭하는 것이고, 기독자로서 그것이 우리에게 삶을 부여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명수 박사는 구원과 건강을 같은 수준에서 이해하므로 자신과 사람들, 환경,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해와 정상적인 상태의 회복을 구원이요, 건강이라고 보았다. 건강은 인간의 구성요소들, 사람들, 환경이 하나님과의 조화요 성령에 의해 영위되는 삶이며, 결국 건강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온전히 가능하도록 질병 없는 몸을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음악치료에서의 ‘치료’의 의미는 무엇인가? 음악치료에서의 치유의 개념은 성서적 치유의 개념과는 다르다. 치유보다는 치료를 돕는 물리적, 심리학적, 과학적 처방이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앞서서 말한 매서만(Masserman)의 말에 의하면 심리학적인 차원에서 치료는 “모든 가능한 윤리적 방법을 동원해서 행동장애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한 과학이며 기술이며, 예술이다.”
(2) 성서의 사례
인류의 윤리의식의 발생은 창 3:1-24에 나타나는 선악의 문제인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꿈같은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유혹당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므로 찾아오는 죄에 대한 형벌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되고, 영적으로 건강한 기쁨을 상실하고, 하나님과 그들 서로간의 관계는 깨어지고 말았다. 사단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여자를 꾀어 선악과를 먹게 했던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엄청난 불행의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가 되었고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피하는 숨는 감정으로도 죄의 속성상 자유로움과 화목함을 상실했던 것이다. 죄로 말미암는 육체적 노동은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이 되고 육체적 노동에 고통과 좌절감까지 따르게 되었다.
미리암의 병이나 웃시야의 병, 게하시의 병, 여로보암의 고통, 고라 자손의 반역으로 땅이 입을 열어 삼키고, 염병이 발병한 경우, 야간의 죽음은 모두가 죄로 말미암은 경우이다.
신약에서는 영적 생명의 적으로 간주되는 마귀로 인하여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므로 오는 거스림, 이 세상으로 조아온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주의 만찬에서 합당하게 떡을 떼지 못한 경우로 오는 병을 일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