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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부, 마약 중독은 영성 치유가 효과적이며 빠른 치유가 가능하다
-손뼉을 치고 악기를 사용-

이창희 기자
작성일 2026-06-05 21:24

본문

이명훈 교수


c) 손뼉을 치고 (63:4, 119:48, 134:2, 141:2)

손뼉을 치면서 노래하는 것은 신자가 기쁨이 넘칠 때 표현하는 현상 중 하나이다. 특히 시편 47편에 손바닥을 치고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손바닥을 치는 것에 대해 이문승은당시에 찬송을 부른다는 것은 박자가 없는 시편을 읊는 것이기 때문에 시작, 호흡, 끝마침을 위하여 지금이나 손바닥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고, 김상배는교회가 현대식 리듬(Rhythm)에 맞추어 박수를 침으로써 생리적 변화에 자극을 주면 쉽게 흥분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은 비성서적이며 수준 낮은 미개한 민족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창조물이다. 그러기에 이 육체가 느끼는 기쁨 역시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주장한 것은 1세기에 이단으로 정죄된 영지주의가 그랬고, 2천년 교회사 동안 주로 이단들이 금욕주의를 거의 주장했는데 이것은 육체는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온 것이었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주장은 기독교에서 철저히 배격되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육체의 기쁨과 함께 그 속에 신령한 기쁨이 있느냐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특히 흑인 기독인들의 예배 모습을 보면 대개 박수를 치고, 춤추며, 리듬(Rhythm)에 맞춰 찬송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박수를 칠 때 자칫 흥분하여 가사에서 의도하는 의미를 망각할 수가 있는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잘 교육하여 박수를 침으로 인해 얻게 되는 것, 곧 원활한 혈액 순환, 기억력의 회복 등은 성령께서 찬송하는 신자에게 허락하시는 전인적인 치유의 은혜이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모든 신진 대사가 더욱 원활하게 작동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도리어 두뇌의 원활한 작동으로 이성이 더욱 냉철해 질 수 있기 때문에 가사를 통하여 더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박수 치는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부정적 경향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교육을 통한 적극적 보완책이 더 중요하다 하겠다.

 

d) 악기를 사용(30:11, 149:3, 150:4, 삼하6:14)

악기를 사용하며 찬송하는 방법이 있다. 악기의 정확한 음정은 사람들의 부정확한 음정의 기준이 되어주고 악기소리는 그 소리를 듣는 회중들의 마음을 더 고조시켜 준다. 그리고 악기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가 잘 조화를 이루어질 때 더욱 감동적인 찬송이 될 수가 있다. 영혼이 지쳐있거나 곤고하여 노래가 나오지 않을 때 악기소리는 이러한 영혼에게 다가가 새 힘과 능력을 불어 넣는 성령의 매개 역할을 한다. 사람이 악기를 연주할 때 악기 소리에 취하여 찬송의 대상을 잊고 음악 자체에서 기쁨을 얻을까봐 악기를 쓰지 않은 교단도 있으나, 이것은 문화의 수용과 적용의 문제이기에 성서적 명령 사항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본다.‘모든 진정한 문화는 기술적인 것과 영적인 힘이 통일성 있게 잘 균형 잡혀있는 것 이라고 할 때 문화의 수단인 악기와 잘 조화되는 것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데 있어서 중요한 한 요소이다.

 

e) 춤을 추며(30:11, 149:3, 150:4, 삼하 6:14)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찬송하는 자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다. 내적으로 넘쳐 나오는 기쁨과 희열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최상의 표현이다. 춤을 추는 동작은 자원하는 상태에서나 혹은 온 몸에 성령으로부터 부어지는 놀라운 힘이 넘쳐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음악에 의하여 심장의 박동이나 호흡 상태에 변화가 온다고 실험결과를 토대로 발표한 바 있다. 믿음의 결과는 담대함이며 성령의 충만은 희락이 그 열매의 한 단면이기에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담대함과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 행위(삼하5:14)를 보면 돌아온 언약궤 앞으로 나아가 높이 뛰면서 찬양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 춤은 성령이 충만하여 그야말로 어느 것에도 속박 받지 않는 자유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f) 일어서서

히브리어에서아마드라는 말은서 있다’,‘나타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주로 서 있었다. 지성소와 성소 안에 앉는 의자가 없는 것은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역사하시기에 일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계시해주고 있다. 에베소서에서도그런즉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4:14)’라고 하였고, 이사야에서도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60:1)하시면서서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때로 묵상하면서 조용히 찬송해야 할 때도 있지만, 승리의 찬송이나 기쁨의 찬송은 일어서서 손을 들고 했을 때 더 큰 감동을 받게 된다. 대개 교회마다 주일 아침 예배시간에는 거의 볼 수 없지만 특별한 집회 중에 보면 찬양을 할 때 일어서서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한국의 문화는 다분히 유교적인 문화의 영향이 짙게 베어 있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데 이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찬송할 때 가능한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흐느끼며, 어떤 사람은 두 손까지 들고, 어떤 사람은 큰 소리로 어떤 사람은 두 손을 가슴에 대는 등 그들의 간절함을 일어서서 부르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항상 서서 찬송을 했다.

 

g) 방언으로

성서에내가 영으로 찬미하고(고전14:15)’라는 말이 나온다. 이 방언에 대해 요한 웨슬레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해를 했다. 조용기에 의하면 성령 충만을 받았다는 표시로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비성서적인 주장이다. 방언은 성령이 충만한 결과 중 그 하나로 나타날 수 있는 증거이지 반드시 방언 자체가 성령의 충만함의 표징이라는 것은 성서가 증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빌리 그래함(Billy Graham)도 말하기를 그가 아는 성령의 충만함을 얻은 신자 중에 많은 자들이 한 번도 방언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한 주장에서도 조용기의 주장이 오류하는 것을 지적했다.

존 쉐릴(John Sherrill)은 자신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음악이 계속되는 가운데 몇 사람이성령으로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악보도 없이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천상의 노래가 예배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신비에 가득 찬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노래였다.” 개인적으로나 적은 수의 모임에서나 방언의 은사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이 방언은 기쁨, 높임, 찬양의 표요 수단이라고 했다.

 

필자는 기도원 집회 때 찬송을 인도할 때 찬송의 절정에 이르게 되면 여기저기서 방언으로 찬송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았다. 이 방언을 무조건 귀신의 역사라고 정죄하는 일부 교단의 교리적 주장도 있으나, 성서에 기록된 것과 같이 방언은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이다. 이 방언의 은사 중에 하나는 외국어를 말함이요, 나머지 하나는 신령한 언어이기에, 찬송할 때 이 두 가지가 다 나타나는 것을 필자는 경험적으로 확인을 했다. 방언이 성서에 계시로 기록되어 있고, 경험으로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에서 방언으로 찬양하는 것을 분별없이 비난하는 것은 무한한 성령의 능력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폄하시키는 무지에서 오는 소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될 것은 상황을 무시하고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방언으로 찬양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방언으로 덕을 끼치지 못하면 안된다는 성서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2. 찬송 방해 요인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와 경배 그리고 예배는 성령으로부터 흘러나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때의 예배는 힘과 감격과 영감이 넘쳐 흐를 수밖에 없다. 회중이 찬송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서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면 이 예배는 의식으로 끝나는 죽은 예배가 될 것이요, 이러한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지 못해 성장이 멈추거나 퇴보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영광 돌리려면 찬송이 살아나야 한다. 은혜롭고 신령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찬송이 살아나야 하기에 찬송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찾아내 이것들을 제거하는 일은 실로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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