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부, 마약 중독은 영성 치유가 효과적이며 빠른 치유가 가능하다
-찬송과 지성-
본문
이명훈 교수
찬송은 인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요, 교회의 신앙적 유산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찬송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고,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데 이것은 성령을 통하여 배우게 된다. 전인격적인 성장을 돕는 성령님의 역사하시는 도구요, 교과서인 것이다. 그러면 이 찬송이 인격의 3요소인 지성과 감정과 의지에 어떻게 역사하여 온전한 인격이 되도록 하는지 그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c) 찬송과 지성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경~BC 399)는 말하기를 인간은 항상 그 자신을 탐구하고 있는 존재라고 했다. 이 탐구하는 기능은 인격의 3요소 중 지성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 많은 경험과 지식이 쌓여져 지성이 형성되는데 이 지성으로 “비교, 추상, 분석, 개념 구성, 판단, 추론” 등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스도인 역시 성서를 통해 미음을 갖게 되고 이 믿음이 체험을 낳아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간다.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인격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찬송은 인격의 한 요소인 지성 발달을 돕는데 큰 역할을 감당한다. 여기서 지성이란 기억, 분별, 판단, 적용, 응용 등 지각을 통해 일어나는 제 기능을 말한다. 이러한 지성으로 안에서 내화된 것이 밖으로 나타날 때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한 표현 방법이 언어이다. 이 언어에 대하여 헤겔(Hegel)의 주장에 의하면 “언어는 외계의 사물이 내화되었다가 다시 외화 되면서 기억으로 바뀐 것”이라고 했다.
찬송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 언어는 말씀의 계시가 경험적 계시를 통해 내회된 사건들이 언어의 형태로 다시 외화된 것이다. 성서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듯이, 이 가사들 역시 성령의 감화로 지여졌기에 부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사자에게 주셨던 감동을 재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래서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이 찬송하는 동안에 잊었던 죄를 생각나게 하고, 다시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함으로써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는 경험을 하게 한다. 바로 찬송은 이렇게 기억을 되살리는 성령의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찬송의 또 하나의 기능은 망각을 방지하는 역할이 있다. 망각에 대하여 힌츠만(Douglas L. Hintzman)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각의 이유는 시간의 흐름의 탓으로 돌리고 있으나 사실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견해에 의하면 계속적인 반복사용이 없을 때는 그 기억이 소멸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찬송은 반복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망각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는 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는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내 주시고, 또 이들을 인도하실 때 갖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인도하셨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찬송에 나타나는 가사들도 작사자들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다양하게 나타나 그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찬송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찬송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며 자신의 상황과 공감대가 이루어질 때,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감동을 통하여 주관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 때 얻어진 지식은 산지식이 되는 것이요, 활발한 신앙생활과 함께 생동감 있는 신앙 인격으로 성장시켜주는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d) 찬송과 감정
정서는 정상적인 인격으로 성장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외부에서 다가오는 여러 가지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사건에 대한 내적인 해석력과 분별력의 정도에 따라 정서의 반응은 비례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연과 성서를 통하여 절대자에 대한 인식의 경험을 통해 감정의 요동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신앙적 인식으로 인한 정서에 대해 마이어(Maier)는 “정서적 표상의 일부는 의지적인 것이어서 목적의 대상을 의식에로 가져오고, 일부는 정적인 것이어서 미적 또는 종교적 상상을 가져와 실천적 정신생활의 기초를 이룬다.”고 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논리적 사고의 두 측면이 있는데, 그 하나는 인식적 사고요, 다른 하나는 정서적 사고라고 했다.
정서적 사고는 정서적 표상에 기인하는 것인데 정서의 종류로는 슬픔, 기쁨, 웃음, 노여움, 두려움, 놀람, 불안, 애정 등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정서적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과 고제를 나누게 되고 또한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속이서도 이러한 표현이 나타난다.
정서적 표현은 공적인 언어와는 또 다른 차원의 표현 방법이다. 이러한 표현은 찬송 속에 있는 정서적인 특징 때문에 더욱 가사의 의미를 승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정서 표현을 통한 자기표현이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사람의 행동은 어느 순간에 가졌던 정서와 직접 관계된 솔직하고 실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기뻐서 뛰고, 비통한 나머지 손을 비틀고, 공포에 치를 떨고, 공포에 소리 지르고, 슬퍼서 흐느끼고, 행복에 대하여 미소를 보내는 등의 정서적인 표현들이 있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어떤 정서적 언어보다도 정확한 언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찬송하는 동안에 이러한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서는 신앙적 상상을 가져와 실천적인 인격으로 성장시킨다. 그러므로 찬송을 통해 얻어진 정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실천적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나는 정서는 가사와 음악이 조화를 이룰 때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나는데 이 관계에 대하여 정정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찬송이 정서를 공급할 때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이것은 종교적인 감정을 일으켜 영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 체험이 바람직하게 되기 위해서는 가사의 정서와 음악의 정서를 일치시켜야 한다.” 고 했다. 이 연상이나 이미지는 원래 음악의 감정 내용의 시적 구체화라고 한다. 그러므로 음악을 강제로 하게 하는 것은 피해야 하나, 음악적 교육을 통해 장려시키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머셀(J. L. Mursell)은 주장했다.
정서의 생성 기원이 언제인가에 대해 캐논(Walter B. Canon)은 그의 저서「Bodily changes in Pain, Hunger, Fear and Rage」에서 정서는 본래 고대인의 기본 생활 조건에 맞도록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싸우느냐, 도망하느냐 하는 단순한 선택을 해야 했던 고대인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복잡해진 현대인의 삶 속에서의 정서적 고갈은 적절한 행동을 촉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억제시킨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정서가 능동적인 행동을 촉진시킨다는 캐논의 주장은 정서적 표현의 일부는 의지적인 것이라는 마이어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 고갈은 적절한 행동을 못하게 하여 결국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상에서 찬송을 통해 나타나는 정서는 그리스도인이 풍부한 삶을 살게 해 주는데 그 이유는‘정서가 인간 개체의 내적, 그리고 외적 자극에 쉽게 반응을 일으켜서 다른 여러 행동에 대한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삶이 결국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인격형성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e) 찬송과 의지
어거스틴(Augustinus)은 인간의 의지에 대해 말하기를 인간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고 도덕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의 뜻을 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의지는 현세의 욕망과 사랑에 이끌리게 되어 있고, 반면에 은총 아래 있는 인간은 모든 사랑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이끌린다고 했다.
레빙(K. Lewin)은 의지의 영역에 대해 말하기를 의지는 생물의 목적적 행동을 일으키는 작용이라고 하면서 요구에 의해 일어나는 동기 유발로부터 목표를 구하여 요구를 만족시키는 전 과정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실천하는데 있어서 의지는 인간에게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조건인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총 아래 성령의 공급하시는 힘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성도의 목표는 성령의 충만함이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 이르는 인격과 성숙함이다. 찬송의 가사가 이러한 목표에로 가도록 하는 기능이 있는데 “언어는 한갓 관념이나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도록 재촉하는 기능”이 있다고 캇시러(Ernst Cassirer)는 주장했다. 그렇다. 이렇게 언어에 어떤 행동을 하도록 재촉하는 기능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연구의 결과에 의하면 찬송은 언어가 말하는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찬송 속에 능동적 신앙 행위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성령의 역사는 권능으로 인한 외적 증거와 회개를 통한 성숙에 이르게 하는 면이 있어서 개인의 성장은 물론, 음악적 기능과 더불어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여 전체 교회의 성장과 부흥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국적으로 의도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회복이기에 그러한 성도의 성숙을 가능토록 역사하시는 수단인 찬송을 대단히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찬송은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행위 중에 가장 최대의 행위이다.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찬송이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을(사43:21)뿐만 아니라 “행동한다는 것은 . . . 자기 자신을 이러한 법칙에로 인도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