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마약 중독은 영성 치유가 효과적이며 빠른 치유가 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본문
이명훈 교수
영적 생명의 치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 줄 알라고 하셨으며, 귀를 기울일 때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하였다. 믿음으로 또한 얻는 생명이 영적 생명이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고 그리하여 생명을 얻게 하려한다고 사도요한은 말했다. 구원받은 인간의 영은 하나님에 의하여 다시 소생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이러한 영적인 것들은 심리하고가 다른 것이다.
b) 심리적 치유
(1) 정의
마음의 치유는 내적 치유라고도 하며, 외적치유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근원은 우리의 내부의 세계이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적 정서적, 그리고 영적인 감각들을 통해서 밖으로 드러내 놓는 것을 말한다.
씨맨즈(Seamands)에 의하면 내적 치유란 “상처받은 감정과 치유되지 못한 기억들을 목회적인 차원에서 돌봐 주고 그 치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베네트(Benet)는 “내적 치유란 성서의 역사를 저해하고 있는 요인들을 치유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원래의 심리적인 본성으로부터 제거해 버리는 일을 주님과 협력하여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리고 존 윔버(J. Wimber)는 “내적 치유란 손상된 감정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죄의 용서와 정상적인 회복을 이루어 주시는 과정으로서 곤경에 처한 우리의 존재와 삶의 일정 영역에 복음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2) 성서의 사례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 위하여 서로 기도하는 것(약 5:16)과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슬픔과 죄악과 질병과 허물을 대신 지셨으며(사 53:4-5) 질고를 담당하셨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다고 하셨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오셨다고(사 61:1)하였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히 13:8)으로 우리 곁에 계신 분이시며 성령으로 인간을 돕는 자로서(롬 8:26-28) 함께 계신다.
c) 생리적 치유
(1) 정의
이것은 각종질병, 사고, 심리적 스트레스 정신적, 신체적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병으로서 성서는 이러한 육체적 질병이 환자의 신체적 장애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자아로서의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음악의 최초의 충격은 신체적인 것이므로 음악적인 진동에 대한 생리적 반응의 관찰이 가능하며 또한 측정까지 할 수 있다. 우리의 청각기관을 통해서 음을 자각하며 그 신경이 활동을 일으킨 결과가 감정적 요소를 체크하는 간뇌, 시상이라는 곳과 대뇌의 피질에 전달된다고 한다. 우리는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혹은 급진적인 악절에서는 인간의 호흡이 빨라진다. 이것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불수적 반사라고 한다. 또한 음악 요소 중, 고음 내지는 저음은 음악의 특질과 관계없는 신경적 이완 내지 긴장의 대응적 효과를 낳는다.
급격한 대비나 격한 돌발적인 불협화음의 지각은 우리의 청각기관의 급속한 상응을 필요로 하며 과장된 속도나 음량은 신경을 너무 자극하여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태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생리적 치유 효과면을 연구하는 작업을 예를 들어보자면, 음악적 템포(Tempo)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점점 상승되는 피부 경련을 일으키는 반응을 보인 연구에서 어린이들이 성인보다 더 반응이 민감했고, 그리고 조울증 환자가 정신분열증 환자보다 더 민감히 반응하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임신 7개월 된 아기를 갖고 있는 임산부 둘을 한 방에 모아 놓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또 다른 한 방에서는 음악을 안 들려주었더니 음악을 들려준 쪽의 임산부의 태아의 맥박이 10-20회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음악을 끝내고 측정하니 5분 이내에 다시 정상 맥박으로 돌아왔다는 보고가 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모두 음악을 통한 어떤 형태의 전달이 생리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음악적 요소는 명백하게 우리의 신경조직에 영향을 준다. 고음과 저음은 언제나 음악의 특질과는 관계없는 신경적 이완 내지 긴장의 대응적 효과를 낳는다. 음악을 듣고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박자를 맞추는가 하면 급진적인 악절(樂節)에서 호흡이 갑자기 빨라지기도 한다. 생리적 영향을 미치는 한 예로 1980년대의 중반부터 국내에서도 시행되어 온 청각 자극검사(acoustic stimulation test)를 들 수 있다. 이 실례는 외부의 소리에 의해 태아의 심박동이 증가하는 정도를 관찰함으로써 소리에 대한 태아의 반응으로 태아의 건강유무를 확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통한 심리적 및 생리적 반응은 치료의 좋은 반응이 될 수 있다.
음악 지각이 강한 정서적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을 관찰해 보면 대뇌의 변연계가 음악적 자극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은 시상을 중개자로 하여 피질과 림빅시스템(Rymbic System) 내부의 작용으로 사람에게 정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또한 음악적 처리과정에는 대뇌의 두 반구, 즉 좌반구와 우반구가 적극적으로 개입되는데 그래서 대뇌의 특정한 부분에 손상을 입어 언어장애가 온 사람이라도 노래의 가사를 부를 수 있는 경우, 노래라는 음악적 활동에 손상되지 않은 대뇌부분이 활성화되어 손상된 부분의 역할을 대체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청각신경의 입력을 받는 뇌줄기의 수질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심장박동 속도나 호흡을 포함한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곳이다. 리듬(Rhythm)적인 구조를 가지는 청각정보는 비 리듬(Rhythm)적인 자극과는 색다른 방법으로 더 높은 청각통로로, 더 큰 강도로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외부에서 들려지는 청각자극에 반응하게 되고 이것은 생리적인 동조화 현상으로 연결되어진다.
(2) 성서의 사례
미리암, 나아만의 문둥병에 관한 것은 신체기관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병이기는 하나 그 병이 그 자신의 죄나 과거의 그가 입은 상처라고는 말하지 않고 있다. 미리암의 경우는 하나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는 죄의 결과였으며 모세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으며 진밖에 7일을 두게 하였다. 나아만의 경우도 그가 왕이 아끼는 매우 능력 있는 전사였지만,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통하여 치료받기를 원했으며 말씀에의 순종으로 고침을 받았다.
신약에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바디메오의 이야기,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이야기가 또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있는 이름을 들고 나와서‘불쌍히 여겨달라’는 간청으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언하고, 요한복음에서는 침을 발라 고쳐주셨으며, 누구의 죄로 인한 것도 아니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한다고 했다. 질병이 죄로 말미암는 것 아니라면 그 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려는 또 다른 뜻이 있다.
이 외에도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 12년 혈루증의 여인, 귀먹고 어눌한 자 등이 있는데 특히 한 문둥병자는 육체적 질병을 인하여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단절된 가운데 가정, 사회, 친구, 이웃과의 떨어져 지내야 하는 관계적 장애를 보여 주고,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단절인 저주 아래 있는 영적 단절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고쳐 주었다.
이처럼 육체적 치유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치유의 요소는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다. 그것이 정서적, 심리적, 마귀적인 요인도 있기 때문이다.
d) 사회적 치유
(1) 욕구와 관계
사회 모든 구성원인 모든 개개인은 각자의 욕구가 있고 나름대로 성격이 있다. 해리 스택 설리반(Harry Stack Sullivan)은 인간의 성격과 욕구를 동일시했고 성격이 곧 관계라고 한 정신의학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의 욕구와 성격에 따라 관계를 맺는데 설리반의 말대로 ‘인간은 인간과 인간간의 영역에서 행동 한다’는 말이 그 말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활동영역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고, 인간과 인간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있는 집단들의 전체가 바로 사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개인은 누구나 집단을 통해서 사회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말은 사회 집단적 동물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일생은 영원한 학습의 행로라고 할 만큼 일생 사는 학습의 연쇄라고 했다.

